사회 종합

코로나 시대의 보이지 않는 칼, '감염자 혐오'

한국연예스포츠신문 2020. 12. 19. 01:15

코로나가 낳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

차별과 혐오, 방역에 도움 안 돼


출처: pixabay



[한국연예스포츠신문] 김유라 기자 = 2020년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 코로나19일 것이다. 지난 1월 국내에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3월에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재는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기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휴대폰에 확진자 발생을 알리는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뜨는 광경이 이제 익숙할 정도다.

코로나19는 '감염자 혐오'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터진 후 확진자를 비롯한 대구 시민 전체를 혐오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었다. 사람들은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혐오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며 다 같이 감염자를 욕하기 바빴다. 심지어 단순히 대구에 방문했다는 이유로 1~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한 기업과 단체도 있었다.

대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든 확진자의 이동경로가 밝혀질 때마다 인터넷에는 근거 없는 추측과 비방이 담긴 악성 댓글이 난무했다. 이에 실제로 악성 댓글을 받았던 한 확진자는 "내가 의도해서 걸린 게 아니다"라며 "내 신상 정보를 퍼트리지 말아달라"라고 호소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이 확진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퍼지며 감염자 혐오는 우리에게 심각한 사회적 우려를 주고 있다.

 


'만인의 혐오'를 받는 코로나 감염자


출처: pixabay


이처럼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바이러스보다도 더 강력한 혐오가 만연해지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지난 4월, 러시아 인터넷 통신사인 '가제타루'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의 하바롭스크주(州) 주도인 하바롭스크시에 사는 한 확진자가 지역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비난이 담긴 내용의 쪽지를 자신의 친척으로부터 전달받았다. 확진자의 이웃 중 누군가가 집 현관문에 "우리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적었다. 심지어 "그냥 죽어라"라는 막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혐오와 차별 문제에 부딪혔다. 특히 일본은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 때문에 튀는 소수자에 대한 이지메 문화가 심각하다. 이에 피해 입은 소수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국가적 재난 상황마다 일본은 이지메 문제를 맞닥뜨렸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도 예외는 없었다.

일본의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여대 부속고교의 학생들은 이 대학교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코로나, 코로나"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등교해야만 했다. 또한 해외로 졸업여행을 다녀왔다가 3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교토산업대학에는 학생 신상정보를 캐내려는 전화가 빗발치고 "불을 지르겠다", "죽이겠다" 등의 협박도 쏟아졌다.


책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코로나19에 감염된 저자가 50일간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과정을 담은 에세이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는 현재 국내에서 일어나는 '감염자 혐오'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는 평소에 방역수칙을 잘 지켰지만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감염되었다. 감염된 소식이 전해지고, 주변에서는 '퇴원 후 회사 복귀하면 나는 휴가 가겠다'라는 타박과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이런 광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한 해 동안 국내에서 확진자와 관련된 혐오 문제는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감염자 혐오'로 심화되는 사회적 갈등

출처: pixabay


감염자에 대한 비난이 사회적 약자나 특정 소수 집단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5월 경기도 용인 확진자가 다녀간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때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에 성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업소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며 성소수자 집단 전체가 비난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과 동시에 언론의 보도 윤리 문제와 확진자 동선 공개 범위에 대한 논란도 일어났다.

이에 성소수자 인권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개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라며 "코로나19를 빌미 삼아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낙인을 공고히 하려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쿠팡 직원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문 / 출처: 뉴스1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감염자를 비롯한 쿠팡 배송 기사들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실제로 한 아파트 단지 건물에는 '쿠팡 직원 출입 자제'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코로나 초기 때부터 택배를 통한 감염 위험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을 뿐만 아니라 택배를 통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류센터에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쿠팡 배송 기사만 보면 멀리 떨어지거나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 쿠팡 배송인데, 사람들 때문에 눈물 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쿠팡 배송 기사라고 밝힌 작성자는 "무거운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5층 수백 곳을 들렀다"라며 "몸무게가 한 달 사이 7 kg이 빠졌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고 "위아래로 훑으며 돌리는 고개, '쿠팡이다, 짜증나', '세균덩어리 오지마'같은 잔인한 말들을 들어야 했다"라며 "그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도 가슴 따뜻한 격려를 받을 때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작성자는 쿠팡맨을 응원하는 편지 사진을 함께 올리며 "몇 개월간 몸 아프고 마음 힘들었을 때 참았던 눈물이 한방에 콸콸콸 (흘렀다)"라며 "배송할 때마다 정말 힘들지만 사람한테 느껴지는 감동도 많다"라는 말도 전했다.


감염자를 향한 비난, 이제 멈춰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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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현상은 반복돼왔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혐오는 방역과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 감염자 혐오 사태가 지속되면서 코로나 낙인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 감염자 혐오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부터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우리가 지금 쓰는 일상적인 용어인 확진자, 격리, 감염 등과 같은 단어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언가 꺼려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라며 "감염병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해서도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차미영 기초과학연구원 데이터사이언스그룹 책임연구자(KAIST 전산학부 교수)는 혐오를 생산할 수 있는 가짜 뉴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교수는 "국가별 가짜 뉴스 모니터링 협업, 사람들이 가장 그럴싸하게 믿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걸러내는 팩트체크 시스템, 가짜 뉴스보다 자극적이지 않아 전파력이 약한 팩트체크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방안 마련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러한 감염자 혐오에 따른 문제가 결국 사회 전체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우리가 무심코 뱉는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2020년은 코로나 사태로 모두에게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현시대를 지혜롭게 공존해나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감염자에 대한 비난 섞인 말보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염자도 피해자임을 명심하며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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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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