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상 인플루언서 산업
비인간화 ∙ 음란물 제작 등 사회적 문제 간과할 수 없어
현명한 공존법 모색해야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 출처: 로지 인스타그램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제작한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가 지난 12월 30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정체를 밝혔다. 2020년 8월 첫 게시물을 시작으로 여행, 패션, 뷰티 등 다양한 사진들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우던 그녀는 실제 인간이 아닌 ‘가상 인간’이었던 것이다.
로지는 해당 사실이 공개되기 하루 전, ‘개봉 박두’, ‘coming soon’ 이라는 해시태그로 궁금증을 모았고 다음 날 ‘virtual influencer’, ‘가상 인플루언서’라는 문구가 담긴 게시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약 4개월 만에 1만 명의 팔로워를 모은 로지는 아기자기한 이모티콘을 포함한 답글과 메시지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지는 국내 최초로 언택트 시대에 최적화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로지의 활약을 예고했다.
'릴 미켈라'(왼쪽)와 '버뮤다'(오른쪽) / 출처: 인스타그램 캡쳐
가상 인플루언서 산업은 해외 여러 곳에서부터 발 빠르게 성장해왔다. 290만 명이라는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릴 미켈라(Lil Miquela)’는 미국 스타트업 기업 ‘브러드(Brud)’에서 2016년에 출시한 가상 모델 겸 뮤지션이다. 그녀는 프라다(PRADA), 겐조(KENZO),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샤넬(CHANEL) 같은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고 보그(VOGUE)의 표지 커버를 장식하는 등 패션 모델로의 입지를 다져왔다.
릴 미켈라가 더욱 ‘진짜’로 보일 수 있는 이유에는 동일 회사에서 출시한 ‘버뮤다(Bermuda)’와의 경쟁 구도가 한몫을 했다. 버뮤다가 릴 미켈라의 계정 해킹을 시도했다는 스캔들은 해외 엘르(ELLE)와 보그(VOGUE) 잡지에서 다루어질 만큼 화제를 모았으며, 우파적 정치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버뮤다의 모습은 실존할 법한 구체적인 모습이자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케아 하라주쿠 지점 모델로 발탁된 '임마' / 출처 : 이케아재팬 인스타그램
이제는 인스타그램이나 화보 사진에서 나아가 영상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목소리를 구현할 수 있는 치열한 기술 개발 경쟁이 예상된다. 릴 미켈라와 버뮤다 모두 패션 및 뷰티 모델뿐만 아니라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며 여러 차례 음원을 발표한 경력이 있다. 릴 미켈라는 싱글 앨범 ‘Not Mine’으로 영국 음원 차트 스포티파이에서 8위를 기록했으며, 버뮤다와 함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Under the Bridge’를 커버했다.
또 다른 사례로, 2018년 CG 전문 회사인 모델링 카페(ModelingCafe)가 개발한 일본 모델 임마(IMMA)는 지난 8월 히라주쿠에 위치한 이케아 전시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먹고 자며 요가와 청소를 하는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람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인기 비결은?
가상 패션 모델 '슈두' / 출처: 슈두 인스타그램
가상 인플루언서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야외 활동에 지장을 받는 기존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대체재로서, 마케팅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이들은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아무리 많은 시간 활동해도 방전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변수로부터 생기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릴 미켈라의 개발사 ‘브러드’가 지난 한 해 동안 창출한 수익은 1170만 달러(약 130억 원)에 달했으며, 교통비, 의상, 메이크업과 같은 부가적인 비용도 소모되는 일반 인플루언서의 수익 규모와 비교했을 때 이를 능가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비즈니스 리서치 기업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이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지출한 비용은 80억 달러(약 9조 원)로, 2022년에는 2배 증가한 150억 달러(약 17조 원)의 지출이 예상된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투입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가 원하는 이미지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10년간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카메룬 제임스 윌슨은 “더 이상 실제 모델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며 2017년에 세계 최초 가상 패션 모델 ‘슈두(Shudu)’를 구현했다. 슈두는 짙은 색 피부가 매력적인 남아프리카 출신의 모델로 완벽한 비율과 대칭형 얼굴을 자랑하며 캘빈 클라인, 디올, 발망 등 각종 패션 및 뷰티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았다.
로지의 개발사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관계자도 “Z세대가 좋아하는 셀럽의 얼굴을 분석해 3D 기술로 로지의 비주얼을 완성했다”며 “기존의 완벽한 미인형 얼굴 가상 모델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동양적인 얼굴로 디자인하고 남다른 감성 표현력을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극복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가
가상 인플루언서와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시점에서 실제 연예인과 아이돌이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소모품 취급을 받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슈두’를 시작으로 패션 업계에서는 인간을 대체하는 가상 모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의 모델을 3D 기술로 쉽게 구현해 낼 수만 있다면 실제 모델을 탐색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상 인플루언서가 구현하는 ‘미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실제 인플루언서는 쉽게 도태되고 만다. 인간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완벽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가상 인플루언서를 합성한 음란물이 제작될 부작용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실존하는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 제작 기술로, 이렇게 제작된 영상 중 98%가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다. 현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의 개정으로 딥페이크 영상 제작 및 유포는 처벌할 수 있지만, 가상 인플루언서를 합성한 음란물은 실제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은 ‘사람의 얼굴, 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에 처벌할 것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과 ‘진짜’가 함께 나아갈 미래
인공지능 법·제도·규제 정비 로드맵 /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완벽한 외형을 모방하는 기술에만 몰두한다면 가상 모델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대체재’에 그치고 만다. 가상 인플루언서가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구사할수록 호감을 넘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골짜기는 기술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다. 이들과 인간 사이에 유대감을 강화할 만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등 올바른 소통 방식으로 채워가야 한다.
나아가 개발과 산업 진흥에 치우쳐 있는 인공지능 관련 법안에도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12월 24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발표한 ‘인공지능 법·제도·규제 정비 로드맵’은 ‘윤리교육 커리큘럼 개발’처럼 윤리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아직 자세한 법령은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순기 국회입법조사처 팀장은 “프랑스·싱가포르·미국 등은 윤리위원회 설립,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된 사람 간의 소통체계 구축, 자동화된 소프트웨어 사용 제한에 관한 규제 법안 발의 등 윤리 기준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법률이나 제도의 구체화를 촉구했다.
지금보다 더욱 완벽한 모습을 띤 가상 인플루언서의 등장은 예견된 미래이다. 즉,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현명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작동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것 중 하나이다”라는 구글 최고 경영자 순다르 피차이의 말처럼 가상 인플루언서와 나아갈 미래는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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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령 기자
출처 : 한국연예스포츠신문(http://www.korea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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