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실효성은 물음표
정진우 교수 “애매한 법이 가장 악법”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2020 산업재해현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요양재해자는 108,379명이었다. 그중 전년 동기 대비 42명이 증가한 2,602명이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이 시행됨에 따라 기업의 안전보호 의무가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따라서 산업재해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강도 높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현재,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과잉처벌, 명확성 논란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이 과연 산업현장의 안전 강화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곡절 끝에 제정된 중대재해법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1월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오랜 곡절을 거친 끝에 제정된 법이다. 2017년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폐기된 지 3년도 더 지난 시점에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박수철 수석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사업주 및 법인의 경영책임자 등에 안전‧보건 조치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규정해 재해 방지를 위한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취지다”라면서도 “경영책임자를 가중처벌하는 것과 법인에 대한 처벌 규정이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경향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소관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020년 21대 국회에 들어와서 그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해온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사회적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중대재해법이 다시 논의됐다. 처벌보다는 경영책임자나 사업주의 산업현장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재해를 예방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이래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제도는 꾸준히 존재해 왔지만, 경영책임자의 산재예방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면 산업현장이 안전해질까?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중대재해법은 여전히 처벌이 눈에 띄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무 및 책임은 흐릿했다. 고용노동부는 유튜브 콘텐츠 <중대재해처벌법의 이해>를 통해 중대재해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영책임자가 산업재해 예방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 처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만 난무할 뿐, 예방의무의 이행과 실효성은 기대하기 힘든 법”이라고 지적했다. 예방의무의 이행으로 이어지기 위해 의무와 처벌 규정이 명확해야 하는데 조항마다 책임의 주체가 모두 달라 명확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법제처 국가법령센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조문 간 의무주체가 다른 ‘모순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4조에서는 의무주체가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되어 있고, 5조에는 시설, 장비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되어 있다. 사업장과 시설, 장비는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의무 이행의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의 예측가능성과 준수가능성에도 심각한 결함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결국 모호한 조항을 빼면 중대재해법에서 남는 것은 막대한 벌금과 실형 선고를 부과할 수 있다는 처벌 조항뿐이다. 형벌법규가 명확하지 않아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유발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대재해법이 과잉 입법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처벌은 강화됐지만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의무는 모호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업장 내 안전 강화가 아닌 ‘1호가 될 수 없다’며 처벌 피하기에 돌입했다.
출처 : 법제처 국가법령센터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처벌 수준에 있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한 형사처벌과 더불어 민사책임까지 부과하고 있다”며 “민사책임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고, 형사처벌에는 하한형을 정해 뒀다는 것은 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6조(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와 제10조(중대시민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을 살펴보면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징역의 하한형은 형법에서도 고의범에게 규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과잉 처벌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유예? 허점 많은 중대재해법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 적용이 2024년까지 유예된다. 그런데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중대재해 사업장 576곳 중 84%에 해당하는 484곳이 50명 미만의 사업장인 것이 드러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처벌 대상 1호를 피하기 위해 이른바 ‘사업장 쪼개기’가 시작됐다.
출처 : 직접촬영
정 교수는 “법의 유예기간을 악용해서 처벌을 피하려는 기업들이 법인을 분리하는 등의 쪼개기를 하고 있다”라며 “실제로 근로자를 줄이는 기업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직영근로자를 줄여 아웃소싱으로 돌려서 외주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산업현장에서 횡행하는 외주화는 산업재해의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꼽혀왔다. 산업현장의 안전 강화를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법이 오히려 위험의 외주화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중대재해법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원청과 하청 중 어느 곳에 물을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제5조(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통해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할 때만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진다고 서술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치밀한 규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 예방 기준이나 보건‧안전보호 조치를 엉성하게 규정하면 예방은 못하고 범법자만 양산하게 된다”라며 “사고 재발은 막지 못하고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분노입법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회나 기업에 실질적인 교훈은 주지 못하고 강하게 처벌했다는 분노 표출 정도로 그치면 안 된다. 재해 예방의무 이행 기준과 안전보건조치 기준을 보다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상태로 규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다 실질적인 입법을 위해서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확립을 위해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정진우 교수는 “산업재해는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 부족뿐만 아니라 불분명한 입법이나 모호한 안전기준도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우리 사회의 중대재해를 모두 기업의 총 책임자 개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결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원청과 하청이 모두 안전 관리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게 해야 하는데 현재의 중대재해법은 어느 한쪽의 의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하청 기업은 안전에 대한 의지나 관심이 매우 낮은 상태”라며 “선진국의 산재예방 법제와 행정체계를 모델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이 산업현장의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법안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4.16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의 시민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의 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필요성은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 공감은 처벌만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강화가 보장되었을 때 지속가능한 것이다. 법이 시행된지 한 달 만에 ‘중대재해법 위반 10호 기업’이 나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안전관리에 소홀한 기업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 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중대재해법에 명시된 안전보호 의무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말일 수도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기업들이 안전한 현장 조성을 위해 체계를 바꾸고 강화할 수 있도록 책임 주체와 의무 이행 방식을 명문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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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은 기자
출처 : 한국연예스포츠신문(http://www.korea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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