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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드라마 속 역사왜곡,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하나

한국연예스포츠신문 2021. 4. 12. 22:39

사극물 속 매번 논란이 되는 역사왜곡

제작자와 방송사의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안지윤 기자 = 태종이 백성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고, 충녕대군(훗날의 세종)은 6대조 선조인 목조(이성계의 고조부)를 기생 때문에 야반도주한 인물로 모욕한다.  왕후가 온갖 미신을 믿어 궁궐 안에 버젓이 신당을 차리고, 《조선왕조실록》은 한낱 지라시가 되었다. 이 내용은 각각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와 tvN 드라마 <철인왕후>의 내용이다.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조선구마사>는 결국 첫 방송 일주일 만에 방영 중지되었고, 이미 종영한 <철인왕후>의 경우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지한 상태다. 

 

출처 : SBS

 


물론 역사왜곡 문제가 지금에서야 논란이 된 것은 아니다. 20년 전 방영된 <태조 왕건>부터 <명성황후>, <주몽>, <선덕여왕>, <기황후> 등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작품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드라마와 영화 속 역사왜곡 및 미화 문제는 이어져 왔다. 

 

역사왜곡의 기준은 무엇일까?

역사왜곡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기록'이다. 이미 역사적 내용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는 사서의 기록과는 다른 내용들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06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9.7%를 기록하고 종영한 MBC 드라마 <주몽>도 기록과는 다른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드라마 내용을 보면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와 부여 금와왕은 친구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삼국사기》(1145년, 김부식 저)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금와왕과 해모수는 친구는커녕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이다. 또한, 드라마 속 주몽과 소서노(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대소(부여 왕자)의 삼각관계 역시 성립될 수 없다. 드라마 종영 이후인 2007년 3월 19일 당시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길수 교수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판타지 사극임을 인정한다"면서도 주요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오류를 지적했다. 

 

1145년(인종 23)경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년 종영한 MBC 드라마 <기황후> 역시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다. 기황후와 그의 오빠 기철에 대한 내용이 문제였다. 드라마 속 기황후는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 충혜왕으로 설정되었던 폐주 왕유를 충직하게 모시며 고려를 생각한 인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이와 다르다. 《고려사절요》에는 기황후와 그 일가의 부정적 행실이 묘사되어 있다. 27권에는 '1363년 기황후는 국왕(당시 고려 공민왕)을 원망해 모함하여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세울 것을 꾀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5~26권에는 기삼만, 기주, 기철 등 기 씨 일가가 '일찍이 세력을 믿고 포악한 행동을 함부로 했다', '임금은 능가하는 위세를 방자하여 나라의 법도를 흔들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조선 전기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시대의 역사서 《고려사절요》(갑인자본)/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충혜왕 역시 고려를 생각하는 강직한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고려사절요》 25권에는 그가 부왕의 후처를 겁탈한 것, 내시의 아내를 강간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도현철 연세대학교 교수는 당시 한 매체를 통해 "한국사 연구에 반대되는 입장으로 드라마 작가가 제작하는 듯하다. 세계에 진출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사실 왜곡은 곤란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과 다른 역사왜곡은 명예훼손 문제로도 이어진다. 인물을 미화하기도 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영화 '명량' 개봉당시 배설(1551 ~ 1599) 장군 후손들이 제작사와 배급사에 제기한 '사자 명예훼손' 형사 소송이다. 배씨 문중은 칠천량 해전 장면, 왜군과의 내통 및 이순신 장군 암살 기도, 거북선 방화,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 등 4곳을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제작사와 배급사를 고소했다. 당시 서울 강남경찰서는 해당 장면이 영화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점, 명예훼손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역사왜곡, 잘못된 역사 인식 전달

 

그렇다면 역사왜곡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많은 전문가들과 누리꾼들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핵심 주장으로 내세우며,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취학 아동, 초등학생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어렸을 적 할머니를 따라 사극을 많이 봤었다는 A 씨(24세)는 드라마 내용을 그대로 믿었던 경험을 밝혔다. "드라마 '명성황후'를 보고 그녀가 나라를 생각하는, 일본에 의해 무자비하게 죽은 불쌍한 왕비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년간 쌓은 국부를 순식간에 탕진했다더라. 그 사실을 알고 충격이 컸다"라고 말하며 미디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제대로 된 역사공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말했다. 

 


tvN 드라마 '빈센조' 유튜브 클립영상에 달린 해외댓글. 지금은 영상 클립이 삭제된 '철인왕후' 클립영상에서도 많은 해외댓글을 볼 수 있었다./ 출처 : tvN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누리꾼들은 K-드라마의 인기가 반갑긴 하지만, 판타지 사극물에 대해 역사왜곡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며 엄청난 인기를 얻은 <킹덤>은 물론이고, 방송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드라마 클립영상엔 많은 영어 댓글이 보인다. 한국 댓글을 찾기 힘들 정도로 외국 드라마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따라 K-드라마의 위상은 높아졌으나 그만큼 사극물을 접하며 왜곡된 역사를 접할 기회도 많아진 것이 아니냐는 누리꾼들의 우려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모르고 보면 외국인들은 진짜인 줄 알겠다", "외국인 시청자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지 않도록 올바르게 생산해야 한다" 등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엄연한 '창작물', 상상력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왜곡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엄연히 작가의 창작물이기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대장금> 역시 역사적 기록대로 시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왜곡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정통 사극에서도 역사적 기록을 다 따르지는 않는데, 판타지 사극이 많이 등장하는 요즘의 드라마 시장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1년 방영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 신숙주와 신면 부자 묘사에 대해 신씨 후손들이 사자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했다. 결과는 무혐의 처분, 원고 패소 판결이었다. 당시 서울남부 지방법원은 "드라마 속 설정은 작가에게 허용되는 범위에서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것으로 보이며 방영에 앞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허구라는 점을 고지해 시청자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극 드라마가 창작의 영역인 점,  제작사 측이 이미 허구임을 인지시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켜져야 할 올바른 역사

콘텐츠가 생산자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맞지만, 사회와 시청자는 역사왜곡을 단순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 속 역사왜곡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러나 상반되는 두 주장의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에 역사왜곡 퇴치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먼저 제작자의 높은 책임 의식 함양을 주장하고 있다. 더 이상 창작물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것은 시청자들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 매체를 통해 "드라마는 이제 특정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닌 세계적으로 유통, 수용되는 콘텐츠"라고 말하며 K-드라마의 영향력을 손꼽았다. 덧붙여 "방송사는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방송 제작과 송출에 임해야 한다"라고 밝히며,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도 좋지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면 역사적 사실 확인과 고증을 위한 자문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 역사 논란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국가적, 외교적 차원의 문제이기에 제작사와 방송사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시청자들의 끊임없는 관심도 필요하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역사왜곡 논란이 거세지자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했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이 80% 완료되었음에도 결국 방영 중지를 결정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체인 시청자들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다.

물론 폐지가 무조건적인 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청자들의 관심으로 작가와 제작사, 방송사 측은 역사왜곡을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높아진 위상만큼, 높아지는 역사의식

K-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지고, 해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가 노미네이트 되더니 이제는 수상까지 했다. 한국 콘텐츠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재 시점에서 왜곡된 콘텐츠는 아직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외국인들에게도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콘텐츠를 통해 비춰지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비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콘텐츠 속 역사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제작자와 방송사의 책임의식이다.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그들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역사물을 다뤄야 한다. 높아진 위상만큼 높아진 역사의식을 기대해본다. 



Tag#조선구마사#역사왜곡#K-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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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윤 기자

출처 : 한국연예스포츠신문(http://www.korea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