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체계‧ 보험제도 모두 부족, 현행 체제 심각
김율리 교수 “바우처 지원 등 제도 개선 필요”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정예은 기자 = SBS <그것이 알고싶다> 1281회 ‘나비약과 뼈말라족’은 극심한 다이어트가 유발한 섭식장애의 위험성을 다뤘다. 일명 나비약이라 불리는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의 부작용과 섭식장애의 위험성을 고발했지만, 여전히 SNS에는 디에타민을 대리 구매한다는 #디에타민 #댈구 등의 해시태그가 성행하고 있다. 섭식장애의 일환인 거식증 치료를 거부하고 마른 몸을 추구하는 ‘프로아나’라는 신조어 역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자료 출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7,647명이던 섭식장애 진단 환자는 2020년 9,467명까지 증가했다. 전 성별과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진료를 받은 집단은 20대 여성으로 전체의 19.6%(7,861명)를 차지했다. 질병코드 F50의 섭식장애는 최근 5년간 진단 인원과 진료비 규모가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러나 섭식장애는 여전히 소외된 질병이다. 섭식장애의 원인을 다룬 보도들 덕분에 섭식장애가 사회적 질병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여전히 섭식장애와 다이어트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섭식장애가 치료를 받아야하는 질환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정신과 상담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정신 질환임에도 전문 치료 센터도 찾아보기 힘들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질병, 섭식장애
신경성 식욕부진증인 거식증과 신경성 대식증인 폭식증을 통칭하는 섭식장애는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음식 섭취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마른 몸에 대한 강박으로 인한 극심한 다이어트 때문에 식사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인 것이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수년 이상을 고통받는다. 또한, 이 기간 환자들은 강박증, 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과 더불어 지속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된다. 장기적인 영양실조는 뇌 기능 이상, 부정맥, 심혈관 질환 등의 심각한 합병증으로도 이어진다. 인제대학교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장 김율리 교수는 “섭식장애 중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가장 치명적인 질환이다. 섭식장애로 인한 영약부족은 뇌 발달에 지장을 가져와 생각의 경직, 감정조절의 어려움, 학습능력의 저하로 직결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섭식장애 환자들은 우울증, 강박증 등의 정신질환도 함께 겪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섭식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머끼의 식이장애 인스타툰'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20대 여성 이 씨는 “섭식장애 때문에 의식주 중 하나인 ‘식’이 무너지면서 건강, 인간관계, 일 등의 다양한 부분이 함께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섭식장애는 사회적인 시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질병인 만큼 사회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예방과 치료에 힘써야 한다”라고 밝혔다. 의학사전에도 섭식장애는 사회·심리학적 요인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질병의 대가는 사회가 나눠 갖지 않는다.
섭식장애의 장벽 ① 치료를 꺼리는 환자
김율리 교수는 “환자는 내원을 꺼리고, 의료기관은 질환에 대한 치료를 꺼린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자조치료, 가족치료와 같이 효과가 입증된 치료들은 인정급여 항목이 아니다. 급여에 포함된 인지행동치료의 경우 치료를 위해서는 치료자가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급여 수가가 지나치게 낮다보니 대다수의 의료기관에서는 시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현실 때문에 환자들은 의료보험체계에서 소외되고, 섭식장애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 접근성이 낮아서 만성화 된 고통에 시달리는 섭식장애 환자들은 신체적 쇠약과 정신적 황폐화로 인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능력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정신장애인 등록제도나, 희귀 난치성 질환 등록제도에서 난치성 섭식장애 환자들은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결국 섭식장애 환자들은 의료나 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
섭식장애의 장벽 ② 보험 제도의 미비, 치료는 환자 몫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9억 3513만 원에서 2020년 42억 2627만 원으로 증가했다. 최근 5년간 매년 수억 원씩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급여실적에 반영된 것만을 집계하기 때문에 인지상담 치료 등의 비급여 진료비까지 합산하면 그 규모는 42억 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환자 1인당 지불하는 급여 진료비는 평균 45,000원가량인데 여기에 비급여 약물, 상담비까지 포함되면 환자 부담액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자료 출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비는 심리치료 센터(클리닉)마다 모두 다르게 책정되는데, 평균 40분에서 1시간가량 진행되는 상담 1회당 보통 10만 원 정도다. 만일 약물치료가 병행되는 정신과 상담이라면 클리닉에 비해 조금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섭식장애의 주요 진단 대상인 20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섭식장애를 경험했던 작가 사예 씨는 “식사치료를 포함한 인지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모두 받았다. 당시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많은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섭식장애는 오래도록 지속되는 질병이며,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떨쳐야 하는 정신질환이라 지속적인 상담 치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F50 코드의 섭식장애는 실손 의료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질병이기 때문에 상담비는 100% 환자 부담이다. 부담스러운 상담비는 치료 중단으로 이어진다. 섭식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치료를 제공하는 김윤아 씨는 “환자들이 섭식장애로 용기내서 치료를 받으러 가도 상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면 회당 평균 12만 원이라 문턱이 너무 높다. 그러다 보니 (섭식장애는) 장기간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인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민간보험사들은 섭식장애의 이차적 신체합병증만을 보험대상으로 하고 있어 섭식장애 환자들은 섭식장애 치료 없이 합병증 치료만 받아야 한다"라며 “치료 효과가 입증된 비약물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바우처 지원을 통해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섭식장애의 장벽 ③ 부족한 전문 치료센터
전문 치료센터의 부재도 섭식장애 치료의 장벽을 높인다. 정신질환 클리닉이 설치된 대형 병원에서조차도 섭식장애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사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은 섭식장애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사예 씨는 “섭식장애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일반 정신과에서도 섭식장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섭식장애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섭식장애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상담 치료만이 가능한 클리닉이 대부분이었고, 상급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대형병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에서 제4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한 전국 45개의 전국 종합병원 중 섭식장애 치료가 가능한 병원 15곳뿐이다. 그마저도 5곳은 성인 이전의 소아·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진료하고 있어 성인 섭식장애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은 10군데뿐이었다. 섭식장애 전문 클리닉이 설치된 곳은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 유일하다. 김윤아 씨는 “미국만 하더라도 수 만 군데의 (섭식장애 치료) 센터가 있고 상담사, 영양사, 정신과 의사가 붙어서 치료를 받는데, 한국은 그런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자기 보고식 검사 등의 간단한 절차로만 진단이 이뤄지고 치료하는 사람들도 섭식장애에 대해 잘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많은 섭식장애 환자를 치료한 김 교수는 전문병동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문적인 섭식장애 회복프로그램과 신체적 위험에 대한 협진 시스템을 함께 갖춘 섭식장애 전문병동의 부재로 위기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체적 손상을 동반한 중증의 거식증 환자들의 치료에 필요한 섭식장애 전문병동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섭식장애 치료의 장벽을 낮추려면
심리상담사 김윤아 님(사진 : 정예은 기자)
원래는 비급여 질병이었던 우울증은 실손보험 표준약관 개정을 통해 2016년부터 급여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갈수록 중요해지는 정신질환 치료를 폭넓게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의도를 밝혔다. 개정 이후 최대 30만 원이었던 약값 보장 한도는 5천만 원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우울증만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 상품도 출시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진단 환자와 치료비 규모가 증가했던 불면증 역시 2018년 11월 16일 실손보험 표준약관이 개정되며 실손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신질환 치료가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질병으로 인정되자 약관이 개정된 이후부터 치료 인원은 꾸준히 증가했다.
전문가와 섭식장애 유경험자들은 섭식장애가 실손보험 보장 질병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시온 씨는 “섭식장애 치료도 실손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건 그만큼 (섭식장애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라며 "나만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누군가는 용기를 얻어 치료를 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섭식장애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로 이차합병증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전체 의료비가 절감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섭식장애 유경험자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섭식장애는 다양한 요인의 결합으로 발생해, 그 결과가 개인과 사회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질병’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 사회는 섭식장애를 유발하는 미디어 등의 외부적 요인에만 집중했다. 치료에 관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없었던 탓에 보험, 전문 병원 등의 제도나 체계에도 구멍이 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를 만들어 내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 안에서 섭식장애 환자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있었다. 고립된 환자는 숨고, 체계와 제도는 환자를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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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은 기자
출처 : 한국연예스포츠신문(http://www.korea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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