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는 장벽이 아니다” KBS 첫 청각장애인 앵커 노희지를 만나다
- 언어치료와 수많은 연습 끝에 마침내 마이크 앞에 선 그녀, 소통의 경계를 허물다
KBS 노희지 앵커 / 제공 - 노희지
노희지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다. 선천적인 청각장애를 지닌 그가 KBS 『뉴스12』의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며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인 앵커로 자리한 것은, 편견과 제약 속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과 마주 서겠다는 오랜 꿈의 실현이었다. 매일 젓가락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반복하고, 뉴스 원고 한 줄마다 ‘전달자의 책임’을 새기며 앵커가 된 노희지. 그녀는 말한다. “도움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저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도 수많은 이에게 ‘가능성의 증거’로 살아가는 한 사람, 노희지의 이야기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현재 맡고 계신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KBS 제8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돼 『KBS 뉴스12』에서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노희지입니다. 국내 방송사 최초의 구화 중심 청각장애인 앵커로서, 소통의 장벽 없는 세상을 꿈꾸며 이 자리에 섰어요.
Q. KBS 뉴스12의 앵커로 데뷔하셨습니다.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책임감이 정말 크고요, 매 순간 무겁게 다가와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받아왔던 언어치료나 다양한 경험들이 결국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하니까 보람도 커요. 제 도전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이 무게조차도 기꺼이 안고 가고 싶어요.
Q. 앵커라는 도전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배경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어릴 땐 발표하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청각장애가 있었지만 반장이나 부반장도 도맡아 할 만큼 활발하게 지냈거든요. 그런데 점점 듣는 게 힘들어지면서 소심해졌고, 그러다 미디어에 관심을 계속 가지게 됐어요. 대학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속기사 선생님들과 장애학생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으며 학점도 4.0으로 우수 졸업했어요.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장해왔기에,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죠. 졸업 후 방황하던 중에 다양한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게 됐고, 예전에 잠깐 품었던 ‘아나운서’라는 꿈이 다시 떠올랐어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도전이라도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어요.
Q. 청각장애라는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앵커가 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사실 겉으로 보기엔 티가 안 나서 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시끄러운 공간에선 대화를 잘 놓치게 되고, 발음을 지적받을 때마다 어릴 적 언어치료 받던 기억이 떠올라 속상하곤 했죠. ‘넌 말 잘하니까 괜찮잖아’, ‘장애인 티 안 나니까 문제 없겠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한 느낌, 외계인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인생은 고통 없이 얻는 게 없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이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어제보다 나은 나를 꿈꾸면서요.
Q. 앵커라는 직업을 준비하면서 특히 도움이 되었던 과정이나, 기억에 남는 배움의 순간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아나운서 학원에서 수없이 카메라 앞에 서보고, 발음이랑 발성을 교정했던 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복식호흡, 젓가락을 물고 발음 연습, 매일 원고 리딩… 그런 과정을 통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달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죠. 그때 정말 ‘말의 무게’라는 걸 처음 느낄 수 있었어요.
노희지 앵커 / 제공 - 블랙스완스피치
Q. 방송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나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항상 “이 뉴스를 보는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그래서 평소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신문을 챙겨보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려고 해요. 또 청각장애가 있으니까 전달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 젓가락을 물고 발음 연습을 해요. 뉴스는 단순히 전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뉴스 진행자로서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가치관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장애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 다양성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장애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도움을 받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고, 저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Q. 뉴스12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면서 느낀 방송 현장의 분위기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요?
A. 녹화 직전에 기자님들이 돌아가면서 제 발음을 하나하나 점검해 주세요. 그때마다 “아, 진짜 함께 만드는 뉴스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고 함께 채워주는 분위기 덕분에 일할 때마다 감사하고 행복해요.
KBS 노희지 앵커 / 제공 - 노희지
Q. 향후 방송 활동 외에도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A. 학창시절 힘들 때,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며 많이 위로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이나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Q. 앵커로서의 역할을 넘어, 청각장애인 또는 장애인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싶으신가요?
A. 장애는 ‘안 보이면 괜찮은 것’이 아니고, ‘보이니까 불편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진짜 공존하는 세상이 아닐까요?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졌으면 해요. 그리고 누군가가 제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지금 꿈을 꾸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A.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걸 이룰 가능성도 분명히 있는 거라고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나아진 나를 꿈꾸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보다 멀리 와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될 거예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훨씬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가능성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도전 자체가 저를 바꿔놨어요. 그리고, 도움받는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힘들 때마다 혼자 참고 강한 척했던 저도 결국 주변의 격려와 손길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 부족해 보여도 괜찮아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문득 “나는 왜 나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 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꿈꾸는 여러분,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Dreams come true!
KBS 노희지 앵커 / 제공 - 노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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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웅재 기자
출처 : 한국연예스포츠신문(http://www.korea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