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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돌 시장 경쟁력, 무한 확장 '세계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2021. 11. 8. 17:08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김보민 기자 = “저희는 8인조 그룹이에요” 4인조 걸그룹 에스파가 지난 5월 ‘넥스트 레벨(Next Level)’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강조한 발언은 화제가 됐다. 왜 네 명뿐인 에스파는 본인들을 8명으로 소개할까? 에스파는 현실 세계의 인간 아이돌 ‘에스파’와 가상 세계의 인공지능 아이돌 ‘ae-에스파’가 만나 싱크를 방해하는 적을 물리치고 서로 교감한다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의 데뷔 전부터 3D 프로그래밍으로 구현된 ‘ae-에스파’와 에스파 멤버가 인스타그램,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이슈를 만들었다. 대중들은 처음에 게임 캐릭터 같은 ‘ae-에스파’가 현실에 존재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되지 않고 실패한 콘셉트”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친구 이름 앞에 ‘ae’를 붙여 저장하거나, ae-에스파가 사는 세상을 일컫는 ‘광야’로 간다는 말을 꺼내는 등 에스파의 메타버스 세계관이 일종의 유행이 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독창적 세계관은 에스파가 처음이 아니다. 에스파 이전에 이미 다양한 아이돌들이 본인의 고유한 세계관을 생성해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제 아이돌에게 세계관이란 레드오션 시장에서 특색으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마케팅 요소이며, 팬들의 충성심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거대한 세계관인 ‘루나버스’를 구축한 그룹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은 해외에서도 논문이 나오며 다각도로 분석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세계관은 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걸까?

 

그룹 B.A.P와 세계관 속 주인공 '마토끼'/출처:TS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세계관의 유래와 경쟁력

아이돌 세계관은 언제부터 구축되었을까. 그룹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3세대 아이돌이 쏟아지던 2010년대이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연이어 데뷔하는 아이돌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한 콘셉트를 잡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2012년 그룹 B.A.P가 등장했다. 이들은 B124AP224 행성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마토끼’들이 행성 에너지원의 멸종으로 인해 다가오는 멸망을 막기 위해 우주를 헤매다 지구로 왔다는 설정을 가졌다. 뒤를 이어 기억도, 초능력도 잃은 채로 지구에 오게 된 외계인들이라는 세계관을 지닌 엑소, 노래를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라는 설정의 AOA 등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그룹들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유치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던 대중들도 이들이 세계관과 융합된 앨범 티저를 공개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관은 정말 그룹의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될까? 각 그룹들은 제작을 넘어 본인들의 세계관과 뮤직비디오에 다양한 이야기를 반영한다. 그룹 ‘온앤오프’ 같은 경우 ‘WHY’ 뮤직비디오에서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대립 탓에 흩어진 이야기를 담았고, 이후 발매된 ‘신세계’에서 열쇠를 찾기 위해 멤버를 모으며 대립이 끝난다. 이와 같이 각 그룹은 발매되는 앨범마다 세계관을 녹여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까지 높인다. 또한, 노래에 세계관을 반영해 흔한 사랑 노래와 차별점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그룹 에스파는 노래 가사에 ‘광야의 것 탐내지 말아’, ‘Black Mamba가 만들어낸 환각 퀘스트’,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등 세계관을 담았다. 사랑 노래를 부르는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하며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한 것이다.

 

세계관의 확장 활용법

가수에게 본질적인 음원, 뮤직비디오 외에도 세계관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2019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화양연화 Pt.0 ’가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의 기존 ‘화양연화’ 앨범 시리즈의 세계관을 담은 웹툰 ‘SAVE ME’는 멤버들이 웹툰 주인공으로 등장해 뮤직비디오 속 여러 장면의 구체적인 스토리를 풀어냈다. 팬들은 “뮤직비디오로만 보기에는 화양연화 세계관이 어려웠는데, 웹툰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FNC엔터테인먼트의 그룹 ‘피원하모니’는 데뷔와 함께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관을 담은 영화 ‘피원에이치: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보였다. 피원하모니는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 흩어진 멤버들이 희망의 별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SF 영화 ‘피원에이치’를 이용하여, 그룹의 색깔과 세계관을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알릴 수 있었다.

세계관을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는 ‘굿즈’가 있다. B.A.P는 마토 행성에서의 본인들 모습인 ‘마토끼’를 모티브로 한 피규어, 응원봉 등을 제작해 팬들이 마토끼를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했다. 엑소는 개별 초능력을 로고로 도식화한 후, 해당 로고를 이용한 스티커, 배지, 목걸이 등을 제작하며 팬들에게 세계관을 각인시켰다. 팬들은 ‘빙결’ 능력을 지닌 멤버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나도 초능력을 가지는 건가”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세계관의 한계와 비판

하지만 이러한 세계관 구축에도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관이 아이돌 그룹보다 우선으로 여겨지는 경우이다. 황도12궁 및 우주와 연관된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우주소녀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멤버들의 별자리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일부 멤버들의 프로필 생일이 실제 생일과 상이한 것이 알려지며, 세계관을 위해 가짜 생일을 만든 것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일부 팬들은 “고작 별자리가 다르다는 세계관 때문에 몇 년을 진짜 생일도 아닌 날에 축하받아야 하는 게 속상하다”라며 주객전도가 된 세계관을 비판하기도 했다. 

음악 평론가 정민재는 본인의 SNS를 통해 “케이팝에서 ‘세계관’이라고 하는 많은 것들에 슬슬 지친다. 특히 회사 단위의 세계관은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 이게 꼭 필요한 건가?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라며 “앨범 한 장에 이야기를 담는 콘셉트 앨범이나 연작 앨범 같은 개념은 좋다. 그런데 현재의 케이팝 흐름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캐릭터와 브랜드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에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네티즌은 “아이돌을 좋아하기 위해 회사의 세계관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에 장벽을 느끼기도 했다”, “회사의 설정 놀이에 놀아나는 기분이 든다”라면서 음악 안에 통용되지 못한 세계관에 불편함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은 점점 더 커지고, 신인 아이돌에게 필수 요소처럼 여겨지고 있다. 세계관이 여전히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오션인 아이돌 시장에서 세계관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명확한 이미지 구축이 가능하고, 그룹을 알릴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여러 사유로 대중의 불편이 커지고 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해하기 쉬운 세계관을 보유하거나, 고유한 세계관 대신 앨범마다의 설정 존재하면 거대한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관심 집중에는 좋은 동력이 된다. 최근 더보이즈가 발매한 싱글 앨범 '매버릭(MAVERICK)'의 티저와 뮤직비디오에는 금속 목걸이와 숫자가 적힌 조끼를 착용한 멤버들이 등장했다. 팬들은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 연상된다는 반응과 함께 이번 앨범에만 구축된 세계관을 흥미롭게 탐구했다. 또한, 아이즈원은 뮤직비디오에서 꾸준히 ‘12 행성과 그리스 신화의 신’과 관련된 세계관을 보였다. 하지만 아이즈원은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부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선에서 그룹을 마무리했다. 팬들은 개별 멤버가 어떤 행성과 연관이 있는지 찾는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내용이 과하지 않아 흥미롭고 좋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이제 아이돌 세계관의 양면성을 인지하고, 대중이 불편이 아닌 호기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규모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한 세계관으로는 소비를 강요하는 상술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음악에 관한 진정성과 생각을 감추지 않으면서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참신한 세계관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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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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